똠양꿍 선셋

 

 

일단은 무엇보다도 새우가 중요하다. 새우가 없으면 똠양꿍이라 부르지 않는다. 생선을 넣어 맑게 끓이면 똠양쁠라, 육수를 닭으로 우려내면 똠양카이, 새우 외에 조개나 생선 등 여러 해산물을 추가하면 똠양탈레, 연유나 코코넛 밀크를 육수에 첨가한 것은 똠양남꼰, 돼지 족발로 만들면 똠양카무라고 부른다. 하지만 똠양꿍이라고 부르는 요리에는 반드시 새우가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꿍’이 태국어로 새우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소머리국밥인데 소머리는 넣지 않고 돼지머리를 넣으면 안되지 않겠는가. 그건 돼지머리국밥이지.

‘똠’은 끓인다는 뜻이다. 물을 넣고 끓일 수도 있지만 새우로 육수를 내어 끓이면 더욱 좋고 닭으로 육수를 만들어도 물론 맛은 있지만 그러면 이미 순수한 의미의 똠양꿍에서는 멀어진다. 닭으로 육수를 내 놓고 새우도 넣지 않은 똠양이 아무리 맛있어도 그걸 똠양꿍이라고 부르면 안된다. 돼지머리국밥이 아무리 맛있어도 그걸 소머리국밥이라고 하면 안되는 것처럼.

그것이 점장이 갖고 있는 똠양꿍에 대한 소신이다. 아니, 철학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라도 어떤 손님이 ‘똠양꿍에 새우 빼고 닭고기랑 돼지고기 많이 넣어주세요.’라고 주문한다면 그런 말을 해줄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 그런 손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점장은 망상을 자주 하기는 하지만 입이 무겁고 말수가 적은 편이다.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녀는 그냥 똠양꿍 2인분을 주문했을 뿐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점장은 육수를 내기 위해 묵묵히 새우 머리와 껍질을 손질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는 서쪽에 있는 섬의 서쪽 해안에 있는 타이 레스토랑이다. 창문 밖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저녁 무렵이 되면 그 위로 석양이 근사하게 내려온다. 가게 이름은 똠양꿍 선셋. 자리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름은 점장이 지었다. 점장의 이름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점장이라 부른다. 이 지역 사람들은 고수를 싫어하지 않는다. 심지어 김치에 고수를 넣어 먹기도 한다. 그래도 간혹 어떤 손님이 요리에 고수를 빼달라고 하면 점장은 두말하지 않고 빼준다. 어떤 사람은 도저히 고수의 향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거면 뭐하러 태국 요리를 먹으러 왔담.

‘똠’은 끓인다는 뜻이고, ‘꿍’은 새우인데 그럼 ‘양’은 무엇인가. 양은 태국의 샐러드인데 맛이 맵고 시다. 양에는 소고기, 돼지고기, 달걀, 해산물, 면, 각종 견과류, 야채, 과일, 허브 등 거의 모든 재료를 날로 써도 좋고, 취향에 따라 절이거나 발효시키거나 말리거나 훈제하거나 찌거나 데치거나 끓이거나 굽거나 튀겨도 좋다. 어떤 재료를 어떤 방법으로 조리하여 넣어도 상관은 없는데 그도 그럴 것이 ‘양’이라는 말은 원래 태국어로 섞는다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비빔밥의 ‘비빔’처럼.

하지만 한국의 비빔밥이 콩나물, 숙주나물,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미나리, 오이, 당근, 무, 양파, 쑥갓, 표고버섯, 쇠고기, 달걀, 육회 등등 어떤 재료를 넣어 비비더라도 거기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맵고 고소해야 하는 것처럼 태국의 양은 어떤 재료를 넣어 섞더라도 맵고 셔야한다. 그래서 양에는 양파 또는 양파를 닮은 샬럿, 피쉬 소스, 라임 주스, 설탕, 고추를 넣는다. 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향초인데 오리엔탈 셀러리나 스피어민트, 파, 파를 닮았지만 향은 다른 레몬그라스, 생강, 생강을 닮았지만 향은 다른 갈랑갈, 고수, 고수를 닮지는 않았지만 향이 비슷한 쿨란트로, 그리고 강황 등이 들어간다. 이런 종류의 향초를 넣은 국물 요리의 이름을 똠양이라고 한다. 끓일 똠자에 샐러드 양자라고 해서 샐러드를 끓이는 것은 아니다. 비빔밥에서 밥을 빼고 냉면을 넣은 다음 비빈다고 해서 비빔냉면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똠양꿍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점장이 준비해 놓은 재료는 다음과 같다.

– 물 2리터

– 레몬 그라스 네 줄기

– 갈랑갈 한 덩어리

– 마늘 다섯 쪽

– 카피르 라임 잎 열 장

– 타이 고추 열 개

– 느타리 버섯 300그램

– 남 프릭 파오 세 테이블 스푼

– 새우 500그램

– 방울 토마토 두 개

– 양파 두 개

– 설탕 세 티스푼

– 피쉬 소스 열 테이블 스푼

– 라임 주스 열 테이블 스푼

– 고수 많이

냄비에 물을 올리고 손질한 새우 머리와 껍질을 넣어 육수를 내는 동안 점장은 레몬그라스의 겉잎을 뜯어내고 머리부분을 잘라낸 다음 칼자루 뒷부분으로 두드린다. 이렇게 하면 레몬 향기가 더욱 풍성하게 우러나온다. 새콤한 향을 맡으며 점장은 생각한다. 레몬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풀에서 어떻게 이런 레몬향이 나는 걸까. 이 레몬그라스의 향 덕분에 가게 안에는 날벌레가 잘 날아들지 않는다. 바다 가까운 곳이라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파리나 모기가 드글거리지만 여름 내내 가게 안에서는 벌레 때문에 귀찮은 일은 없었다. 향이 충분히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한 점장은 두드리기를 멈추고 대각선 모양으로 비스듬하게 썰어낸다. 조금 낮아진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칼날에 반사되어 노랗게 빛났다.

남자는 말이 없다.

여자도 말이 없다.

점장은 시선을 돌려 다시 요리에 집중한다. 갈랑갈은 생강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톡 쏘는 맛은 덜하고 은은하게 흙 냄새가 난다. 점장은 뿌리 부분을 잘라 얇게 썰어낸 다음 마늘 다섯 쪽의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카피르 라임 잎을 한 줌 집어 손으로 뜯었다. 자르지 않고 뜯어야 향이 더 많이 빠져나온다. 그리고 타이 고추의 꼭지를 떼어낸 다음 레몬그라스를 두드릴 때와 마찬가지로 칼자루 뒷부분으로 두드린다. 물론 이것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면 매운 향과 맛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 새우 머리와 껍질을 끓이고 있던 육수에서 그것들을 건져내고 안에 레몬그라스와 갈랑갈, 카피르 라임 잎, 마늘과 고추를 집어 넣는다. 재료에서 맛과 향이 잘 우러나오려면 냄비의 뚜껑을 덮고 십 분 정도를 끓여야 한다. 그동안 점장은 라임을 잘라 손으로 짜서 즙을 만든다. 시중에는 라임 주스를 병에 담아 파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신선한 라임을 직접 쓰는 것이 낫다. 이 또한 점장의 소신 중 하나였지만 철학은 아니었다. 라임의 가격이 비싸거나 가게가 많이 바쁠 때에는 점장도 가끔 사 놓은 라임 주스를 쓰곤 한다. 물론 점장은 입이 무겁고 말수가 적은 편이기 때문에 손님에게 그런 사실을 일일이 말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망상을 자주 하기 때문에 어느날 어떤 손님이 ‘이 집 똠양꿍은 라임을 직접 짜지 않고 시중에서 파는 라임 주스를 쓰는군요. 실망이네요.’라고 말하는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 그런 손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넣기 위해 느타리 버섯을 미리 씻어 놓는다. 냄비에서 끓고 있는 재료의 맛과 향이 충분히 우러나왔을 무렵 아까 손질해 놓은 새우의 살을 집어 넣는다. 그리고 바로 불을 줄이고 남 프릭 파오를 넣는다. 남 프릭 파오는 볶은 고추와 마늘, 양파, 샬럿, 설탕, 식초, 식용유, 새우소스, 피쉬소스, 카피르 라임 잎 등으로 만든 고추장 같은 물건이다. 물론 고추장과는 다르기 때문에 똠양꿍에 고추장을 넣어도 곤란하고 고추장 찌개에 남 프릭 파오를 넣어도 곤란하다. 남 프릭 파오에 대해서는, 점장은 어떤 소신도 철학도 갖고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다른 한식집들도 어지간해서는 고추장을 직접 담아가면서 장사를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장은 아무런 부담도 갖지 않고 통조림 캔을 따고 남 프릭 파오를 숟가락으로 퍼서 냄비에 집어넣고 잘 풀어지도록 천천히 휘저었다.

아까 씻어 놓은 느타리 버섯을 넣고 방울 토마토와 양파를 썰어 넣는다. 이제 거의 다 되었다. 남은 것은 새우를 끓이면서 나오는 거품을 떠내고, 피쉬소스와 설탕을 넣어 간을 맞추는 일이다. 태국어로 남쁠라라고 부르는 피쉬소스는 생선을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것으로 주로 멸치를 쓴다. 물론 한국의 멸치젓과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삼겹살을 구워 피쉬소스에 찍어먹으면 독특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삼겹살을 쌈 싸먹을 때 고수를 조금 넣어보면 고수의 향이 기름진 돼지 고기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깻잎도 먹는 민족이 고수를 싫어하다니. 점장은 그런 생각을 하며 피쉬소스의 병뚜껑을 열어 양을 재어가며 냄비에 넣었다. 이것도 시중에서 파는 물건이라 별 소신이나 철학은 없었지만 대단히 세심한 모습이었다. 적당하다고 생각한 점장은 이제 불을 줄인다. 열이 어느정도 가시고 나서, 아까 짜 놓은 라임 즙을 집어 넣는다. 짜 놓은 것을 한 번에 다 넣는 모습은 세심하지는 않았지만 거기에는 소신이 가득했다. 그런 소신에서 더 나아가 점장은 한 주먹에 넘치도록 고수를 쥐어 제일 위에 올렸다. 모름지기 똠양꿍이라면 고수는 많이 넣어야 한다. 그것은 점장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철학이었다.

남자는 말이 없다.

여자도 말이 없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각자의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 치고는 특이한 모습이다. 두 사람은 가끔씩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본다. 크고 노란 태양이 하늘을 진홍색으로 물들이며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두워져 검붉게 일렁이는 물결이 반짝이며 흔들렸다.

점장은 이제 카트에 똠양꿍을 싣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두 사람은 연인일까. 그렇다면 다툰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헤어질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이 똠양꿍에는 좋은 재료와 점장의 소신과 철학.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름의 향기가 담겨있다. 혹시라도 이 요리를 먹고 기분이 풀려 다시 마음을 돌이킬지도 모른다. 늦여름, 바다로 들어가는 석양은 아쉬우면서도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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