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 유니버스

 

 

남자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생각한다. 어째서 그런 이름일까. 어릴 때부터 정해져 있던 발음의 소리와 글자의 모양. 한자의 뜻을 풀어 보아도 명쾌해지기는커녕 더욱 알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져드는 의미. 아무런 설득도 합의도 없이 스스로를 대신해버리는 과정에 대한 무력감.

병원에 가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다가 간호사가 자기 이름을 부를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체국에서 소포를 보내기 위해 송장에 볼펜으로 자기 이름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경우에는 자신이 스스로의 이름을 쓰거나, 남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이 낯설지 않다.

이름이 낯설어지는 순간은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보거나, 현관문을 잠그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지금 여자가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 “그게 아니야.”라고 했을 때, 남자는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어색해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름을 바꾸고 싶을 정도였다. 저기 잠깐, 미안하지만 지금부터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줘.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게 아닌 것 정도는 아무래도 좋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게 아니라는 것은 남자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무슨 이름으로 불러줄까?”

남자는 생각했다. 다른 이름이라면 무엇이라도 상관없었다. 예를 들어, 지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똠양꿍 같은 거라도.

“똠양꿍?”

여자는 잠시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가, 조금 웃으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너, 똠양꿍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

“몰라.”

“그래도 이름을 똠양꿍으로 하고 싶다는 거지?”

“응.”

“이제부터 영원히? 법원에 가서 개명신청이라도 할거야?”

“아니, 그건 몰라. 그냥 제발 좀…”

“알았어. 똠양꿍.”

여자의 얼굴에서 점차 웃음기가 걷혔다. 약간 부끄러운 듯이. 어쨌든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바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기도 어려웠다. 이미 조금 웃어버렸기 때문에. 어쩌면 남자가 농담을 해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남자는 시종일관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때때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똠은 끓인다는 뜻이야.”

무슨 말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여자는 입을 열었다.

“양은 샐러드. 꿍은 새우야.”

여자는 똠양꿍을 보며 말을 이었다.

“샐러드를 끓인다는 게 아니라, 양에 들어가는 향신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됐어. 양이라는 말에는 원래 섞는다는 뜻이 있어. 여러가지 야채와 향신료를 섞어서 만들면 그게 양이야.”

“꿍.”

남자가 새우를 보며 끊어내듯 말했다.

“뭐라고?”

“꿍이 새우였구나.”

여자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응. 꿍이 없으면 똠양꿍이라고 부르지 않아.”

“그럼 꿍으로 할래. 그거면 충분해.”

남자는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더이상 말을 이을 수 없게 된 여자는 어렵게 숟가락을 들고 그릇에 담긴 국물을 떠서 입으로 가져간다. 그 동작은 마치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느릿하게 이어지고 어색하게 끊어졌다.

남자는 똠양꿍 위에 올라가 있던 새우를 젓가락으로 집어 자기 접시로 가져가며 말했다.

“이 꿍은 태국에서 왔대.”

“그건 어떻게 알아?”

“저기, 벽에 적혀 있어.”

여자는 새우의 사후세계에 대해 생각한다. 태국에서 잡힌 새우가 먼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와서 다른 요리도 아닌 똠양꿍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희극인 것 같기도, 어쩌면 비극인 것 같기도 했다.

남자는 왼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으로 새우의 머리를 잘라냈다. 그리고 계속해서 숟가락으로 새우의 몸통을 눌러 고정시킨 채 오른손에 든 젓가락으로 껍질을 벗겨냈다. 여자는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왜?”

“아니, 그냥. 꿍 껍질 그렇게 벗기는 사람은 아마 너 밖에 없을 거야.”

“이렇게 하면 벗기기 쉬워. 조개 껍데기에서 살 떼어낼 때도 그렇고.”

남자는 시큰둥하게 말하며 껍질을 벗겨 낸 새우를 반으로 잘라 여자에게 내밀었다.

“응? 아냐 괜찮아.”

“큰 꿍은 여기에 하나 밖에 안 들어 있어. 작은 건 몇 개 더 들어있지만.”

여자는 머뭇거리며 자기 접시에 새우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은 갖고 있던 물건을 대략 반으로 나누어 정리해 놓았다. 짧지 않은 동안 같이 살아왔다보니 한 물건이 두 사람 모두의 것인 경우도 있었고, 어떤 물건은 어느 사람의 것도 아니기도 했다. 그런 것들 중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었고, 나눌 수 없는 것들은 공평하게 나눠 가졌다.

“이 고수는 어디에서 왔을까?”

여자가 몸을 돌려 벽에 적혀 있는 원산지 표기를 보았지만 고수는 적혀있지 않았다.

“글쎄. 잘 모르겠네. 국내에서도 고수는 많이 기르니까. 아마 국산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우리집에서도 고수 기른 적이 있었지.”

“그랬지. 여행 다녀오니까 다 죽어 있었지만.”

“애견 호텔처럼 화분 호텔도 있으면 좋을 텐데.”

여자는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는 듯 무표정하다. 새우의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남자도 이내 자신이 해서는 안되는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끊는다. 남자는 어렵게 숟가락을 들고 그릇에 담긴 국물을 떠서 입으로 가져간다. 그 동작은 마치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느릿하게 이어지고 어색하게 끊어졌다.

남자는 말이 없다.

여자도 말이 없다.

똠양꿍 한 그릇이 석양을 가로지른다. 그 뒤로 강아지 한 마리가 따라간다. 새우라는 이름의 강아지는, 자기 이름이 낯설게 느껴진 적이 있었을까. 새우야. 새우야. 우리가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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